판소리움직임 탐구 – 배우 편 2022 (Pansori Movement Research – Actor Ver. 2022)

– 202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사전제작활동지원 연극분야 선정 

– 신촌문화발전소 공간지원프로그램

<판소리움직임 탐구 – 배우 편> 희곡 개발을 위한 리서치 및 워크숍

판소리움직임 탐구자/드라마터그 : 김지혜

 

판소리 움직임 탐구 배우 편은 서로 뿌리와 분야가 다른 네 명의 탐구자가 판소리 움직임이라는 큰 주제를 중심으로 모였을 때, 어떤 종류의 확산적 탐구 방향성이 제시 되는 지를 실험하는 프로젝트 입니다. 판소리 창작자/안무가/배우인 조아라, 고수/전통 연희 퍼포머/뮤지션/배우인 김솔지, 배우 마두영, 드라마터그 김지혜가 모여 2022년 3월부터 4월 사이 8회 차의 1차 워크숍을, 9월부터 11월 사이 10회 차의 2차 워크숍을 진행 하였습니다. 이 여정을 끝마치고 각자의 분야로 복귀했을 때, 새로운 문을 열어 주는 다양한 질문을 손에 쥐고 돌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1차 워크숍은 <수궁가가 조아라>라는 창작 판소리를 배우며 각자의 예술적 뿌리가 갖고 있는 관점, 특장점 및 한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판소리와 연극의 연기 기법 차이 및 교수법 차이, 솔로 퍼포먼스로서의 판소리, 스탠드업 코미디로서의 판소리, 씬 파트너 (scene partner)로서의 고수, 판소리에서 듣기 (attentive listening)란 무엇인지 등등의 질문을 나눴습니다. 창극 공연 관람 후 연극과 판소리의 접점 및 창극의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 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에서 파생된 다양한 질문을 수집하고 2차 워크숍의 방향성을 설정한 뒤 약 4개월간의 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차 워크숍은 연습실에서 몸을 움직이며 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지금 아카이브 코미디캠프의 김진아 연출, 퍼포머 안담을 초대하여 스탠드 업 코미디에서의 스토리텔링 구조, 임시적 공동체로서의 관객과 관계 맺기, 취약한 위험 (vulnerability in risk-taking) – 안전함 – 재미의 관계, 책임감을 덜고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코미디 관객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정진세 작/연출을 초대하여 연극 작업자로서 느끼는 전통 예술의 특이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후 과정 공유 공연을 위한 텍스트를 선정하고 즉흥을 활용한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눈 흥미로운 질문 중 일부를 공유해 봅니다. 

– 정(精)과 한(恨)이라는 정서를 사용하지 않고 창극이나 판소리를 할 수 있을까?

– 전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예술을 어떻게 설명하거나 정의 할 수 있을까?

– 판소리 속의 전형적인 인물 군상을 넘어 현대의 인물 –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욕망과 상태의 면모를 가진 인물 – 을 판소리 안에서 어떻게 구현 할 수 있을까? 

– 판소리는 현대인의 복합적인 심리상태와 서브 텍스트(subtext)를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 소리 안에서 연극 연기 기법의 일부인 액션과 리액션은 무엇일까? 판소리에서 소리는 무엇에 반응(react)하여 나오는 것일까? 

– 감정이 판소리의 장단과 호흡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 판소리에서 현재성(liveness)란 무엇인가? 

– 판소리/솔로 퍼포먼스에서 듣기(attentive listening)란 무엇인가? 

– 배우에게 호흡은 기본이다. 호흡은 찰나에 떨어지고 내뱉는 호흡에 발화를 하게 되는데, 배우에게 숨은 무엇인가?

– 판소리의 가사는 과거에 쓰여 졌다 보니 학습된 시김새가 늘 들어가 있다. 요즘에는 이 시김새가 이야기를 방해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가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시김새는 무엇일까? 또한 장단도 이야기에 맞추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박자 안에서 어떻게 장단과 움직임, 소리를 찾을 수 있을까?

– 판소리는 소리의 확장 (큰 볼륨의 소리)를 기반으로 구성 되어 있다. 판소리를 소리의 축소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ASMR 판소리는 어떤 감각을 전달할 수 있을까?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퍼포머 탐구자들이 남긴 탐구 과정 기록 중 일부를 공유해 봅니다. 

마두영: 네 번째 워크숍 후기

판소리를 배우면서 떠오른 단상들을 언급해보고자 한다. 먼저, 시제가 섞여있다. 연극에서 ‘인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과거에서 현재로, 또는 현재에서 과거로 시제가 이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당시의 생생한 경험이 아닌 이미 지나온 일에 대한 가치 판단을 가지고 발화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수궁가가 조아라>에서 토끼는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온전히 들어가 버린다. 그렇다고 과거에 머무르며 드라마의 스토리만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처럼 ‘소리꾼’인지 ‘토끼’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인물로서 관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한다. 과거의 시점에 머무를 때 역시 소리의 내용을 들어보면, 관객에게 전달하는 내용과 대화의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내용이 혼합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사극 안에는 어느 정도 ‘극적 약속’이라는 지점이 존재한다면, 판소리에서는 ‘청중과의 약속’이 존재하는 듯 느껴진다. 시제와 인물의 존재, 전달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다양하게 변주되어도 청중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소리가 매우 극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응축된 에너지와 충분한 호흡량,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발성이 필요하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 건 왜 이렇게 극적으로 소리를 내야만 하는 가이다. 이 부분은 시제와도 연결되는데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인물이 왜 현재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극적으로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것일까. 소리를 들어보면 재현이라기보다 오히려 과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소리 안에서 연음과 시김새로 시간을 길게 늘렸다가, 장단 안에서 빠른 템포로 속사포와 같이 밀어붙인다. 장단 안에서 이런 소리들은 인물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지만, 사실 동적인 에너지는 없다. 연극에서 대사는 상대방을 움직이게 만드는 최후의 수단이다. 발화가 아닌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상대방을 움직이게 할 수도 있고, 적극적인 행동만으로 상대방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위의 두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 마지막 수단이 바로 말로 상대방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소리 대목은 상대방을 움직이게 만들지 않는다. 청중으로 하여금 인물에 대해 공감하게 만들고 연민을 자아내게 만드는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다른 공연 예술과 다른 판소리가 가진 독창성과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판소리움직임 탐구 – 배우 편>이기 때문에 이 지점을 ‘연극성’으로 치환할 수 있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조아라: <판소리움직임 탐구 – 배우 편> 개념 기록

장단

호흡이 규칙을 갖게 되고 일정한 템포에 머무르게 되면 장단이 된다. 또한 장단마다 호흡 운용이 달라지고 특징적인 리듬이 생긴다. 장단을 몸으로 인식할 때 ‘발걸음’이 가장 효과적이다. 지면과 나와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서 장단을 인식하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움직여보면서 장단을 몸으로 익히는 것은 리듬감, 호흡, 몸의 컨트롤을 통합적으로 몸이 알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효과적이다. 이 과정 속에서 몸은 서로 연결하려고 노력을 하면서 스스로 찾아가는 길을 만들어낸다. 중력으로부터 – 땅으로부터 – 발바닥을 통해 힘을 받아 올려서, 호흡으로 소리든, 움직임이든, 말이든 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알게 된다면 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물론 각각의 메커니즘이 상이한 부분이 있고, 그 차이와 연결지점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듣기

고수는 소리꾼의 파트너로서 배우의 상대배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수는 장단으로서 소리꾼과 지금 이 순간, 현장에서 서로에게 집중하며 상호작용 한다. 이미 연습되어 있는 것의 재현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판’소리가 아닐 것이다. 판소리는 이미 그 말에서 담겨 있듯이 소리를 통해서 소리꾼과 고수, 관객이 하나로 연결되어 공감으로서 하나의 판을 만드는 예술이다. 따라서 소리꾼과 고수는 팽팽하게 서로를 ‘듣는다’. 그 동안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이 부분이다. 고수는 팔로워가 아니다. 판소리는 혼자 다 끌어가는 솔로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아주 큰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발산체로서의 훈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듣기 훈련이 중요하다. ‘듣기’의 범주는 다양하다. 장단이라는 정확한 템포와 박의 질서를 듣는 것에서부터, 관객의 흐름을 듣기, 나 자신의 퍼포밍을 듣기(보기), 판의 전체 흐름을 듣기 등.

<판소리움직임 탐구 – 배우 편>에서 무엇을 탐구할 것인가?

액션과 리액션 탐구. 주고받기, 듣기, 상호작용 연구. 판소리는 1인극에서만 적용 가능한가? 연극의 씬 연기에서 어떻게 적용가능한가? 판소리는 혼자 여러 역할을 넘나들면서 액션과 리액션의 간극을 넘나들며 수행한다. 따라서 액션과 리액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을 액션으로 본다면, 고수와의 상호작용 자체를 액션과 리액션으로 볼 수도 있다. 열려 있는 상태의 몸으로서 어떻게 즉각적으로 반응할 것인가? 소리꾼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자.

<김솔지: 작업 일지>

고수의 역할

고수 역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워크샵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의 고수, 다른 방식의 고수를 찾고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를 배우는 것 자체가 10년 만 이었는데, 많이 더뎌졌다고 느꼈다. 조아라의 판소리는 현대적이다. 그래서 기존 전통 판소리프로젝트를 할 때보다 생각할 부분이 많아서 복잡하긴 하나 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악기만 연주하는 고수가아닌 확장된 역할로서의 고수를 생각하게 되었다.

숨구멍찾기

고수에게 숨구멍은 무엇일까? 소리꾼의 호흡과 고수의 호흡은 다르다. 숨구멍을 잘 찾고 그것을 잘 이용하는 소리가 좋은 소리라고 했다. 소리를 하면서 한번도 숨구멍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부르다가 숨이 차면 이쯤에서 숨을 한번 쉬고 하는 것 이라고만 생각 했는데, 소리에서는 이 숨구멍이 그 소리를 대변하는 정서 혹은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그렇다면 장단에서의 숨구멍은 무엇일까? 소리꾼과 진행하는 장단에서 고수는 어떻게 숨구멍을 만들어 낼까? 추임새가 숨구멍이 될 수 있을까? 고수는 메꿔주고 채워주는 존재라면 고수에게 숨구멍이 무엇일까?

장단의 원형에 대하여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 개인적인 질문이 있다. 나는 왜 원형을 피하려고 하는가? 원형은 왜 재창작 되어야 하는가? 소리는 형태 안에서 동시대적인 창작 방법을 지향하고 있는데 장단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단은 늘 여전히 원형을 고수하며 소리가 어떻게 변형이 되어서 굳건히 원형 그대로를 연주하는 것에 의문이 있었다. 물론 소리북이 아닌 다양한 악기들을 가지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들이 있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원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원형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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