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움직임 탐구 – 배우 편 2022 (Pansori Movement Research – Actor Ver. 2022)

– 202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사전제작활동지원 연극분야 선정 

– 신촌문화발전소 공간지원프로그램

<판소리움직임 탐구 – 배우 편> 희곡 개발을 위한 리서치 및 워크숍

판소리움직임 탐구자/드라마터그 : 김지혜

 

판소리 움직임 탐구 배우 편은 서로 뿌리와 분야가 다른 네 명의 탐구자가 판소리 움직임이라는 큰 주제를 중심으로 모였을 때, 어떤 종류의 확산적 탐구 방향성이 제시 되는 지를 실험하는 프로젝트 입니다. 판소리 창작자/안무가/배우인 조아라, 고수/전통 연희 퍼포머/뮤지션/배우인 김솔지, 배우 마두영, 드라마터그 김지혜가 모여 2022년 3월부터 4월 사이 8회 차의 1차 워크숍을, 9월부터 11월 사이 10회 차의 2차 워크숍을 진행 하였습니다. 이 여정을 끝마치고 각자의 분야로 복귀했을 때, 새로운 문을 열어 주는 다양한 질문을 손에 쥐고 돌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1차 워크숍은 <수궁가가 조아라>라는 창작 판소리를 배우며 각자의 예술적 뿌리가 갖고 있는 관점, 특장점 및 한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판소리와 연극의 연기 기법 차이 및 교수법 차이, 솔로 퍼포먼스로서의 판소리, 스탠드업 코미디로서의 판소리, 씬 파트너 (scene partner)로서의 고수, 판소리에서 듣기 (attentive listening)란 무엇인지 등등의 질문을 나눴습니다. 창극 공연 관람 후 연극과 판소리의 접점 및 창극의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 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에서 파생된 다양한 질문을 수집하고 2차 워크숍의 방향성을 설정한 뒤 약 4개월간의 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차 워크숍은 연습실에서 몸을 움직이며 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지금 아카이브 코미디캠프의 김진아 연출, 퍼포머 안담을 초대하여 스탠드 업 코미디에서의 스토리텔링 구조, 임시적 공동체로서의 관객과 관계 맺기, 취약한 위험 (vulnerability in risk-taking) – 안전함 – 재미의 관계, 책임감을 덜고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코미디 관객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정진세 작/연출을 초대하여 연극 작업자로서 느끼는 전통 예술의 특이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후 과정 공유 공연을 위한 텍스트를 선정하고 즉흥을 활용한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눈 흥미로운 질문 중 일부를 공유해 봅니다. 

– 정(精)과 한(恨)이라는 정서를 사용하지 않고 창극이나 판소리를 할 수 있을까?

– 전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예술을 어떻게 설명하거나 정의 할 수 있을까?

– 판소리 속의 전형적인 인물 군상을 넘어 현대의 인물 –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욕망과 상태의 면모를 가진 인물 – 을 판소리 안에서 어떻게 구현 할 수 있을까? 

– 판소리는 현대인의 복합적인 심리상태와 서브 텍스트(subtext)를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 소리 안에서 연극 연기 기법의 일부인 액션과 리액션은 무엇일까? 판소리에서 소리는 무엇에 반응(react)하여 나오는 것일까? 

– 감정이 판소리의 장단과 호흡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 판소리에서 현재성(liveness)란 무엇인가? 

– 판소리/솔로 퍼포먼스에서 듣기(attentive listening)란 무엇인가? 

– 배우에게 호흡은 기본이다. 호흡은 찰나에 떨어지고 내뱉는 호흡에 발화를 하게 되는데, 배우에게 숨은 무엇인가?

– 판소리의 가사는 과거에 쓰여 졌다 보니 학습된 시김새가 늘 들어가 있다. 요즘에는 이 시김새가 이야기를 방해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가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시김새는 무엇일까? 또한 장단도 이야기에 맞추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박자 안에서 어떻게 장단과 움직임, 소리를 찾을 수 있을까?

– 판소리는 소리의 확장 (큰 볼륨의 소리)를 기반으로 구성 되어 있다. 판소리를 소리의 축소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ASMR 판소리는 어떤 감각을 전달할 수 있을까?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퍼포머 탐구자들이 남긴 탐구 과정 기록 중 일부를 공유해 봅니다. 

마두영: 네 번째 워크숍 후기

판소리를 배우면서 떠오른 단상들을 언급해보고자 한다. 먼저, 시제가 섞여있다. 연극에서 ‘인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과거에서 현재로, 또는 현재에서 과거로 시제가 이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당시의 생생한 경험이 아닌 이미 지나온 일에 대한 가치 판단을 가지고 발화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수궁가가 조아라>에서 토끼는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온전히 들어가 버린다. 그렇다고 과거에 머무르며 드라마의 스토리만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처럼 ‘소리꾼’인지 ‘토끼’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인물로서 관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한다. 과거의 시점에 머무를 때 역시 소리의 내용을 들어보면, 관객에게 전달하는 내용과 대화의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내용이 혼합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사극 안에는 어느 정도 ‘극적 약속’이라는 지점이 존재한다면, 판소리에서는 ‘청중과의 약속’이 존재하는 듯 느껴진다. 시제와 인물의 존재, 전달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다양하게 변주되어도 청중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소리가 매우 극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응축된 에너지와 충분한 호흡량,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발성이 필요하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 건 왜 이렇게 극적으로 소리를 내야만 하는 가이다. 이 부분은 시제와도 연결되는데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인물이 왜 현재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극적으로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것일까. 소리를 들어보면 재현이라기보다 오히려 과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소리 안에서 연음과 시김새로 시간을 길게 늘렸다가, 장단 안에서 빠른 템포로 속사포와 같이 밀어붙인다. 장단 안에서 이런 소리들은 인물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지만, 사실 동적인 에너지는 없다. 연극에서 대사는 상대방을 움직이게 만드는 최후의 수단이다. 발화가 아닌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상대방을 움직이게 할 수도 있고, 적극적인 행동만으로 상대방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위의 두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 마지막 수단이 바로 말로 상대방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소리 대목은 상대방을 움직이게 만들지 않는다. 청중으로 하여금 인물에 대해 공감하게 만들고 연민을 자아내게 만드는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다른 공연 예술과 다른 판소리가 가진 독창성과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판소리움직임 탐구 – 배우 편>이기 때문에 이 지점을 ‘연극성’으로 치환할 수 있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조아라: <판소리움직임 탐구 – 배우 편> 개념 기록

장단

호흡이 규칙을 갖게 되고 일정한 템포에 머무르게 되면 장단이 된다. 또한 장단마다 호흡 운용이 달라지고 특징적인 리듬이 생긴다. 장단을 몸으로 인식할 때 ‘발걸음’이 가장 효과적이다. 지면과 나와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서 장단을 인식하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움직여보면서 장단을 몸으로 익히는 것은 리듬감, 호흡, 몸의 컨트롤을 통합적으로 몸이 알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효과적이다. 이 과정 속에서 몸은 서로 연결하려고 노력을 하면서 스스로 찾아가는 길을 만들어낸다. 중력으로부터 – 땅으로부터 – 발바닥을 통해 힘을 받아 올려서, 호흡으로 소리든, 움직임이든, 말이든 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알게 된다면 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물론 각각의 메커니즘이 상이한 부분이 있고, 그 차이와 연결지점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듣기

고수는 소리꾼의 파트너로서 배우의 상대배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수는 장단으로서 소리꾼과 지금 이 순간, 현장에서 서로에게 집중하며 상호작용 한다. 이미 연습되어 있는 것의 재현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판’소리가 아닐 것이다. 판소리는 이미 그 말에서 담겨 있듯이 소리를 통해서 소리꾼과 고수, 관객이 하나로 연결되어 공감으로서 하나의 판을 만드는 예술이다. 따라서 소리꾼과 고수는 팽팽하게 서로를 ‘듣는다’. 그 동안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이 부분이다. 고수는 팔로워가 아니다. 판소리는 혼자 다 끌어가는 솔로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아주 큰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발산체로서의 훈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듣기 훈련이 중요하다. ‘듣기’의 범주는 다양하다. 장단이라는 정확한 템포와 박의 질서를 듣는 것에서부터, 관객의 흐름을 듣기, 나 자신의 퍼포밍을 듣기(보기), 판의 전체 흐름을 듣기 등.

<판소리움직임 탐구 – 배우 편>에서 무엇을 탐구할 것인가?

액션과 리액션 탐구. 주고받기, 듣기, 상호작용 연구. 판소리는 1인극에서만 적용 가능한가? 연극의 씬 연기에서 어떻게 적용가능한가? 판소리는 혼자 여러 역할을 넘나들면서 액션과 리액션의 간극을 넘나들며 수행한다. 따라서 액션과 리액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을 액션으로 본다면, 고수와의 상호작용 자체를 액션과 리액션으로 볼 수도 있다. 열려 있는 상태의 몸으로서 어떻게 즉각적으로 반응할 것인가? 소리꾼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자.

<김솔지: 작업 일지>

고수의 역할

고수 역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워크샵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의 고수, 다른 방식의 고수를 찾고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를 배우는 것 자체가 10년 만 이었는데, 많이 더뎌졌다고 느꼈다. 조아라의 판소리는 현대적이다. 그래서 기존 전통 판소리프로젝트를 할 때보다 생각할 부분이 많아서 복잡하긴 하나 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악기만 연주하는 고수가아닌 확장된 역할로서의 고수를 생각하게 되었다.

숨구멍찾기

고수에게 숨구멍은 무엇일까? 소리꾼의 호흡과 고수의 호흡은 다르다. 숨구멍을 잘 찾고 그것을 잘 이용하는 소리가 좋은 소리라고 했다. 소리를 하면서 한번도 숨구멍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부르다가 숨이 차면 이쯤에서 숨을 한번 쉬고 하는 것 이라고만 생각 했는데, 소리에서는 이 숨구멍이 그 소리를 대변하는 정서 혹은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그렇다면 장단에서의 숨구멍은 무엇일까? 소리꾼과 진행하는 장단에서 고수는 어떻게 숨구멍을 만들어 낼까? 추임새가 숨구멍이 될 수 있을까? 고수는 메꿔주고 채워주는 존재라면 고수에게 숨구멍이 무엇일까?

장단의 원형에 대하여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 개인적인 질문이 있다. 나는 왜 원형을 피하려고 하는가? 원형은 왜 재창작 되어야 하는가? 소리는 형태 안에서 동시대적인 창작 방법을 지향하고 있는데 장단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단은 늘 여전히 원형을 고수하며 소리가 어떻게 변형이 되어서 굳건히 원형 그대로를 연주하는 것에 의문이 있었다. 물론 소리북이 아닌 다양한 악기들을 가지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들이 있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원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원형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조아라사 2022

조아라x모므로살롱: 조아라사

조아라는 ‘몸소리말조아라’ 대표이다. ‘몸소리말조아라’는 몸, 소리, 말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와 형식을 탐구하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연극, 전통, 무용, 다원, 미술, 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삶과 예술의 선순환 구조 속에서 과정중심의 작품 만들기를 지향한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위치한 ‘몸소리말조아라 센터’는 조아라의 집이자 창작공간으로, 지속적인 네트워킹 허브를 구축해 예술가 뿐 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길 희망하며 대안공간에서의 공연, 전시, 워크숍 등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조아라사>는 조아라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조아라詞라는 의미와 더불어 조아‘라사’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사용한다. 양복점 이름에 많이 쓰던 ‘ㅇㅇ라사’의 라사(raxa)는 포르투갈어로, 오버코트 같은 양복감으로 쓰는 양털로 짠 두툼한 방모직물을 이르는 말이다. 그 라사(羅紗)가 우리나라 종로나 소공동으로 들어와 수제 양복점으로 변신했다.

<조아라사>를 기획한 조아라는 미싱을 사고, 배우는 것에서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마포구 신수동의 지역상권 상인들과 조아라가 호기심을 느끼는 예술가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영상, 글, 그림, 사진 등으로 기록한다. 이 과정을 바탕으로 인터뷰이에 대한 오브제를 미싱으로 만들고, 노래를 짓고, 전시 및 퍼포먼스 형태로 발표하는 다원예술 프로젝트가 바로 ‘조아라사’이다.

<조아라사>는 조아라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를,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발굴한 이야기를 조아라의 몸으로 담아내며 그 과정 안에서 직조되는 다양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조아라사> 2월호 “그녀는 숫자에 약하다”


<조아라사> 3월호 “이너프라운지_김정은 대표님 인터뷰”


<조아라사> 4월호 “명품 옷 맞춤 · 수선 전문_김경희 대표님 인터뷰”


<조아라사> 5월호 “방레코드 방우현 대표님 인터뷰”


<조아라사> 6월호 “로스코지_이인지 대표님 인터뷰”


<조아라사> 7월호 “조아라사 모므로 짓다 – 오브제 편”


<조아라사> 8월호 “동굴 속 마녀”

<조아라사> 9월호 “김송요의 <조아라사> 견습일지”

<조아라사> 10월호 “<조아라사>를 함께 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인터뷰”

<조아라사> 11월호 “<미싱 조아라 이야기> (Missing Joahra Story)”

Be-Muse : 맺고 풀고 2021 (Be-Muse : Wind and Unwind 2021)

시각예술가 이유진과 공연예술가 조아라는 『Be-Muse : 맺고 풀고』를 통해 서로의 뮤즈가 된다. 함께 생활하면서 놀이처럼 혹은 대화처럼 공동 창작을 실천한다. 변태變態를 거듭하는 이들의 관계성은 여러 분야의 예술가와 만나 진화하며 다양한 면모와 맥락이 중첩되는 예술적 언어로 발현된다. 이 변태의 과정은 공연예술의 관점에서, 시각예술의 관점에서, 퍼포먼스의 관점에서 비평적으로, 수행적으로, 유기적으로 해체와 재조립을 반복하며, 뭉쳤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다시 뭉쳐진다. 『Be-Muse : 맺고 풀고』는 삶 속에서 예술을 실천하고 예술 속에서 삶을 발견하는 관계 예술의 선순환적 구도求道이다.

이유진은 드로잉, 영상, 퍼포먼스,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 및 협업 등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과정미술과 관계예술을 실험하는 시각예술가다. 그에게 창작은 곧 ‘실천하는 것’으로 그것의 결과물은 다변적이면서 유일무이한 경험, 그것의 기억 및 기록, 그리고 쉽게 버리지도 각별히 보존할 필요도 없는 누군가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부적 같은 미미한 미적 오브제들이다. ● 조아라는 ‘몸소리말조아라’의 대표이자 연출, 안무가, 작가, 소리꾼, 무용수, 배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몸소리말조아라’는 몸, 소리, 말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와 형식을 탐구하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삶과 예술의 선순환 구조속에서 과정 중심적인 작품을 만들어 관객들과 공명하고, 지금 여기, 몸을 감각하고 소리와 움직임을 연결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

Muse : [    ] : Muse ● 『Be-Muse : 맺고 풀고』는 비평이 없는 편이 가장 ‘올바르게’ 설명 될 수 있다. 수전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해석이 과학적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일종의 정당화, 의식적 행위임을 서술한 바 있다. 수전 손택이 반대하는 해석이란 일련의 법칙을 예증하거나 암호를 만드는 것. X가 사실은 A를 나타낸다는 것을, Y가 사실은 B라는 것을, Z가 실은 C라는 것을 계속해서 번역해 내는 일이다. ● 그러나 그러한 번역 작업도 사실은 또 한 번 번역을 거친 언어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특히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의해 설정되어 온 언어적 상징 체계, 이 고정된 언어 속 해석의 세계에 살고있다. ● 현대의 많은 여성 미술가들은 부권(父権)적 언설이 지배되기 이전의 언어를 향하여 작품을 생산해왔다. 동시에 자신의 삶에 대해서, 주어진 이 세계의 언어로 번역 해야하는 딜레마를 마주쳐왔다. 프로이트에게 텍스트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건들도 모두 해석을 위한 사례였던 것처럼, 여성은 특히 익명의 뮤즈, 즉 정당화에 안달 난 텍스트로서 취급되어 낱낱히 분해되고 해설 되고 설명 되고 번역 되어 왔다. ● 그렇다면, 서로의 뮤즈가 되기로 결정한 두 여성 아티스트에 대해 또 내가 어떤 정당화를 가해야 할까?

여기, 그나마 주어졌던 자기 증명의 과정조차 전 지구적 질병의 상황으로부터 압수 당한 예술가(조아라)와 죽음이 예정된 공생 위에서 일상을 받아들이는 예술가(이유진)가 있다. 그들은 서로의 뮤즈가 되기로 결정 하면서, 복잡한 언어로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기보다 어떠한 ‘말 없음'(요가, 침묵 드로잉, 요리 등)을 선택한다. 그들의 작업노트 등에서 드러나듯, 이들이 함께 하는 모든 행위는 불교의 공(空) 개념으로 이어진다. “공(空)은 무(無)가 아니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 있다.” (2021.3.14. 조아라 에세이) 공 개념의 핵심은 결국 진리는 언어화 할 수 없다는 것, 동시에 만물은 연결성을 통해 존재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 두 사람의 순환 속에서 확장된 또다른 관계들은 그들의 작품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근본이 된다. 그들의 애인, 요가 선생, 동물 등 이 세계를 이루는 구성 요소들은 부수적인 재료라기보다, 뮤즈와 동일 선상에 놓여진, 그물처럼 확장된 또 다른 존재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작가 개인에게 삶의 딜레마를 환기시키는 일종의 해석적 장치로서 발견된다.

두 사람은 각자 서로를 뮤즈화 함으로써 스스로 해석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를 언어로 번역 하기 보다 합동 창작이라는 비언어적 해석 – 다시 일상을 만드는 회귀 과정 – 으로 되돌리고 있다. 침묵과 함께, 그들의 중간 지점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 무언가 [    ]*는, 연기(緣起) 즉 모든 존재의 동시적 상호 의존성으로서의 흔적이자 결과물이다. (“인연因緣-연기緣起” 이유진 작업노트) 이 흔적들은 물리적인 작품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예술적 행위가 반드시 물질성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예술의 특성 역시 공 개념과 닮아있음을 깨닫게 한다. ● 기존의 창작자와 뮤즈 간의 관계는 일방적이면서도 타인이 끼어들 수 없는 독점적 관계였다. 그러나 여기 두 뮤즈 의 마주봄 사이에는 [    ]가 끼어있다. ‘맺고-풀고’라는 부제처럼 공기(空氣)를 바느질 해 옷을 기워 입듯, 그들은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전혀 다른 개인이 된다.

나는 일부러 비워둔 이 침묵의 의자에 (많고 많은 것들 중에서도) 부디 비평을 끝끝내 끌어 앉혀 시끄럽게 떠드는 일 따위는 되도록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폭력적 언어로의 귀환이며, 공을 ‘무’로 치환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을 배신하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신은 불가피하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언어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언어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한계적 언어로 말해야 하며 심지어 나는 이 전시의 비평가로 참여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전시의 참여 기록에는 그 말도 안 되는 발버둥의 최선 역시 남아있다.) 두 여성 작가가 자기(뮤즈) 앞에 ‘Be-‘를 붙인다면, 창작자와 뮤즈를 관조하며 떠들던 비평가의 위치는 어떻게 변화 해야 하는가? 다른 인연의 조각들이 그러했듯이, 조아라와 이유진 사이, [    ]에 잠깐 앉거나 주변부를 빙글빙글 도는 방식으로 나와 관객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 그 때문에 이 비평은 비평가-되기 에 대해서 고민하는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해석이 + – 의 문제라면, 흔적 없이 해석을 데려 가고 싶다. ■ 조혜수

* 내가 그들의 작품 형태를 [    ]로 표기하는 까닭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지 않는 경우도 존재하거니와, ‘무언가’ 혹은 ‘어떤 것’ 등으로 언어화 하는 것보다 비어 있는 시각적 이미지가 그들이 드러내고자 한 ‘공’의 성질과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In “Be-Muse: Wind and Unwind,” visual artist Yujin Lee and performance artist Ahra Jo become each other’s muse. Like an amusement or conversation, Lee and Jo’s co-creation takes place during their sporadic cohabitation, which lasts from a few consecutive days to a full month. In the process, divergent layers and connections are added through their engagement with many artists from different disciplines. Embracing countless metamorphosis, their relational art manifests into a living and breathing artistic language. From the perspective of the performing arts, the visual arts, and everything in between, their engagement with the process is ceaseless, especially in their commitment to critically, performatively, and organically dismantle and reassemble (wind and unwind) both their relationship and collaboration. “Be-Muse: Wind and Unwind” is a relational project that believes in the virtuous cycle of everyday life and the practice of art. ● Yujin Lee is a visual artist who experiments with process art and relational art using a variety of media and methods like drawing, video, performance, audience-participatory projects, and collaborations. Lee believes art to be a ‘way of practicing life,’ creating a singular yet variable experience, its recollections and documentations, and other incidental art objects that are like amulets, neither to be easily discarded nor cherished. ● Ahra Jo is an active director, choreographer, writer, singer, dancer, and actress. She runs a project group named, BodySoundSpeakJoAhRa, that explores various stories and forms using body, sound, and speech. The group focuses on creating process-oriented works that echo the sentiment of the audience, heighten the senses of the body, and connect sound with movement. ■

Muse : [    ] : Muse ● Be-Muse : Wind and Unwind is better off without this text. In Against Interpretation, Susan Sontag describes interpretation as a conscious act, a kind of justification that began from the scientific approach of the Enlightenment. The kind of interpretation that Sontag opposes are the ones that establish a set of principles or construct a code to be deciphered. It is a perpetual cycle of translation that describes how X is in fact A, that Y is in fact B, and that Z is in fact C. ● All the same, bear in mind that such translation work is yet again conducted in a language that has already gone through another translation. We chiefly live under a symbolic system of patriarchal language, in a world of interpretation that is imprisoned by such language. ● Many contemporary female artists’ practices have been propelled toward the language before patriarchy, while facing the dilemma of having to translate her life with the language of the patriarchal world. As Freud took both texts and individual lives as cases for his interpretation, women, especially anonymous muses, have been disassembled, described, interpreted, and translated, as if they are some text, waiting to be justified. ● Then, what justification should I inflict upon the two female artists who have decided to become each other’s muse? ● Here are two artists: an artist whose self-realization process was impounded by a global pandemic (Ahra Jo), and an artist who’s daily life embraces the irony of the symbiotic life where death is ordained (Yujin Lee). To practice being each other’s muse, they chose silent forms (yoga, drawing, cooking, etc.) instead of elaborate language describing their relationship. As revealed in their artist notes, all of their activities point back to the Buddhist concept of Sunyata(nothingness). “Nothingness is not nothing. Everything exists in a relationship.” (2021.3.14. Notes from Jo’s Essay Album) The core concept of Sunyata is that truth cannot be verbalized, and that all things exist interdependently. Their collaboration formed upon a foundation of other relationships that have emerged out of their oscillation. Their lovers, yoga teacher, animals and other worldly beings are not mere subdivisions of their relationship, but equal and distinct collaborators cocreating an extended web-like entity. At the same time, these elements also act as a kind of interpretive device that evokes life’s dilemmas for the artists. ● Lee and Jo form their own interpretations by “be-museing” each other. And rather than translating this into language, they take on a non-verbal interpretation of collaborative art making–the process of reverting back to the everyday. In silence, a new form, [    ]*, surfaces between the two. It is a trace, a result of an action, Pratitya-samutpada, the “interdependent co-arising” or Nidana, “links.” (From Lee’s studio note) The outcome may or may not be a physical work of art, as not all creative practices necessarily hold materiality. This guides us to recognize how the essence of art mirrors the concept of Sunyata. ● Previousl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rtist and his muse was that of one-sidedness and exclusivity, which no one dared to intervene. However, here, situated between the gazes of these two muses is [    ]. Like the exhibition’s subtitle, Wind and Unwind, Lee and Jo’s new clothes are sewn with their exchanging breaths. With it, they are transformed into completely different individuals, while being the same person that they have always been. ● Here is a chair of silence, willfully left unoccupied. I dread taking that seat and making a cacophony of interpretations (among other things). That would be reinstating the violence of language, and replacing “nothingness” with “nothing.” It feels like a betrayal. (Though this betrayal is inevitable. As we live in a world of language, where we are left to inadequately utter how we live in a world of language. And above all, I have agreed to participate in their collaboration as a “critic.” The documentation of our meetings leading up to this writing have captured my very best act of wiggling through it all.) When two female artists place ‘be-‘ in front of themselves (as each other’s muses), where should the critic, who had always contemplat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rtist and her muse from afar, stand? As did the previous Nidanas, I invite the audience to join me by taking a temporary seat between Ahra Jo and Yujin Lee or dancing around the fringes of the [    ]. To some extent, this text is also my own contemplation of what it means to “be” a critic. If interpretation is a matter of + -, I want to take it with me at zero, leaving no traces behind. ■ Hyesu Cho

* I used [    ]. to mark the form of Lee and Jo’s collaboration because what they create sometimes lacks a concrete form. But more so, an image of a black rectangle seemed closer to the indescribable concept of Sunyata than such depleted words like a “thing” or “something.”

판소리움직임 탐구 – 조아라 편 (Seoul Art Market PAMS Choice 2021)

<판소리움직임 탐구>는 소리, 움직임, 말을 ‘진동으로서의 에너지’로 바라보고 상호 연결되는 지점을 탐구한다. 또한 소리, 움직임, 말이 ‘판소리움직임’을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지점을 탐구하고 표현 방식을 개발하며, 워크숍/공연/피드백의 순환 고리를 통해 방법론을 구축하고자 한다.
<판소리움직임 탐구 1>은 탐구의 시작으로, <춘향가> 중 ‘사랑가’의 한 대목을 통해 호흡이 장단이 되고, 장단에 얹힌 소리가 판소리가 되며, 판소리가 움직임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탐구했다. <판소리움직임 탐구 1.3>에서는 <춘향가> 중 ‘사랑가’와 더불어 <흥보가> 중 ‘가난이야’를 중심으로 ‘울음의 몸’을 탐구하는 과정까지를 ‘렉처 퍼포먼스’ 형태의 쇼케이스로 선보였다. <판소리움직임 탐구 – 조아라 편>은 <춘향가> 중 ‘사랑가’, <흥보가> 중 ‘가난이야 – 울음의 몸’과 더불어 <흥보가> 중 ‘부어내고 – 웃음의 몸’까지를 탐구하며 3부작을 마무리한다.

<Pansori Movement Research> begins with this question. ‘What is the movement starting from Pansori?’ ‘Pansori Movement’ is a term excogitated by Joahra of ‘BodySoundSpeakJoAhRa’, which refers to a methodology that starts from the prototype of Pansori, integrates sound and movement, and organically interacts. The direction of <Pansori Movement Research> is to exist as a constantly vivid energy, which breathing, sound, and movement are naturally connected and changed.

세부정보
· 연출 /안무/출연 : 조아라
· 공연시간 : 67분(전막) / 20분(서울아트마켓 프리젠팅)
· 무대크기(가로*깊이*높이) : 7*7*4m
· 투어인원 : 7명(출연자 1명, 스태프 6명)

Promotion Information
· Director/Choreographer/Performer : Ah-ra Jo
· Duration : 67mins / 20mins (PAMS Presentation)
· Stage size(W*D*H) : 7*7*4m
· Tour size(Performer+Staff) : 7 (Performers 1, Staffs 6)

우리가 모이면 축제다 2021 (It’s a festival when we gather 2021)

<우리가 모이면 축제다>는 김태빈, 이정호, 강한나 세 명의 무용수의 각기 다른 삶의 이야기입니다.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며 함께 모여 춤을 추는 것 자체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리서치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재인식하고, 동시에 각기 다른 개성과 공통분모를 찾으며 춤을 통해 연대의 힘을 키워나갔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우리들의 여정이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는 당신에게도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나는 이상주의자다. 현존하고싶은 이상주의자다.” 강한나(나비 역)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인줄 알았어요. 경쟁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서야 깨달았죠. 어떤 삶을 살든 나의 선택이고 나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라는 것을요.” 김태빈(경주마 역)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아요. 제 자신이 부끄러운 적 없어요. 일부러 더 반항하는거 아니냐고요? 저는 청개구리가 아니에요, 그냥 이게 나예요.” 이정호(청개구리 역)

“나비, 경주마, 청개구리의 이야기로 꾸며진, 특별하지 않은 우리들의 여정이 당신에게도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조아라(디조니소스 역)

조각난 뼈를 가진 여자와 어느 물리치료사 2022 (A woman with a fragmented bone and a physical therapist 2022)

삶 속에 우연처럼 등장하는 사고와 고통으로 인해 우리는 무엇을 만나게 되는가. <조각난 뼈를 가진 여자와 어느 물리치료사>는 ‘연기(緣起) – 모든 만남과 헤어짐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명제에서 시작한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사실과 허구를 오가는 구성으로 진행된다. 

예술가 조아라와 물리치료사 박원일이라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2016년 조아라의 오른팔 요골두가 부러지고 조각난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은 물리치료실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 조아라 삶의 지향점이 달라졌다. <조각난 뼈를 가진 여자와 어느 물리치료사>는 실제 두 사람의 대화에서 발견한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별을 통해, 두 남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고민거리들을 만나고 극복해나가는지 탐구하는 작품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서 예술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예술가와 정규직/비정규직 전환의 문턱에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원봉사를 꿈꾸는 물리치료사의 대화는, 사소한 잡담에서 시작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더불어 수직운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요골두’와 회전운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척골’의 사랑 이야기, 핫 핑크색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같은 허구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논픽션과 픽션을 유영하는 모큐멘터리로 발전된다.    

<조각난 뼈를 가진 여자와 어느 물리치료사>는 2021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공연예술 연극분야 선정작으로 2021년 6월 쇼케이스 형태로 발표되었고, 2022년 1월 27일부터 30일까지 홍익대학교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본 공연으로 공개된다.